안하느니 못했던 영상화 | [배트맨 : 킬링 조크]

애니메이션 영화 [배트맨 : 킬링 조크]는 안보는 게 나을 뻔했다. 킬링 조크의 원작 만화를 읽을 때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조커라고 생각했다. [배트맨 : 킬링 조크]에서 조커는 “멀쩡했던 사람을 미치게 만들려면 아주 나쁜 날 딱 하루만 있으면 돼.”라는 자신뿐만 아니라 배트맨에게도 해당하는 주장을 하고 이를 증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개에 있어서도 배트맨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려는 조커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곁다리로 그가 겪은 ‘나쁜 하루’가 어땠는지를 보여준다. 배트맨이 조커를 찾기 위해 어떤 추리를 했는가 무슨 조사를 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결국 배트맨도 조커를 찾지 못하다가 초대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화가 되며 작품의 초점은 흐트러진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누구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애니메이션은 배트걸, 바바라의 독백에서 시작하고 이야기 중심은 조커, 조커의 과거, 배트맨으로 옮겨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배트걸은 킬링 조크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사건, 조커와 그의 과거는 사람을 망칠 수 있는 ‘나쁜 하루’, 배트맨은 원작보다 더 늘어난 분량으로 조커 추적을 보여준다. 결국 원작에서 중심처럼 보였던 ‘나쁜 하루’는 여러 개의 스토리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원작 만화가 오래전부터 비판을 받은 지점 중 하나가 바바라 고든을 소모적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애니메이션이 나오며 앞부분이 추가된다는 말을 듣고 이 문제가 바뀔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여기서도 바바라는 소모되고 말았다. 배트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추가했다는 30분은 뒷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다. 배트걸에게 작업을 거는 젊은 마피아와 배트걸을 통제하려는 배트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극 전개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시작부터 바바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은 바바라가 되어야 하고 결말까지도 바바라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추가된 이야기가 바바라에게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이게 킬링 조크 안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같은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바바라는 조커가 쏜 흉탄을 맞고 증발해버린다.

[배트맨 : 킬링 조크] 원작에서의 조커 추적 장면. ©DC Comics

여기에 배트맨의 조커 추적 장면이 늘어난 것도 바바라의 소모적 사용에 도움을 더했다. 위에서 설명했듯 이 추적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원작에서 배트맨이 조커를 쫓는 과정은 단순히 한 장으로 요약되어 표현된다. 그런데 이 늘어난 추적 과정 중 배트맨은 성매매 여성들과 대화를 한다.
“보통 그 사람은 나오자마자 꼭 찾아올 텐데? 아마 다른 여자가 생겼나 보네요.”
이 대사로 바바라는 단순히 총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성폭행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암시를 준다. 더 비극적인 암시를 위해 굳이 한 페이지의 연출을 몽땅 버리고 한 컷짜리 장면에 비중을 줘버렸다면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보여줬어야 한다.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된 뒤 논란이 벌어지자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브루스 팀은 “자신은 원작을 영상화시키기만 했을 뿐”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그 말대로 원작을 영상화시켰을 뿐이라면 그대로 만화 연출을 따라 영상화를 했다면 비난을 피할 수 있었을 거다. 아니라면 원작이 비판받는 지점을 확 바꾸어 새롭게 영상화를 시켰다면 원작과는 다른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어정쩡하게 바꿔놓고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 건 책임회피로 보였다. 차라리 러닝타임이 짧더라도 만화를 내용 그대로 옮겨놓았다면 원작의 한계를 아쉬워했을지 모른다. 별로 유익하지 않은 영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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